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비밀 4가지

맥아더 장군하면 떠오르는것이 바로 한국 전쟁 입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맥아더 장군을 오늘날까지 이름을 널리 알리도록 한 전쟁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의 오만함 성격과 판단미스로 인해서 중국에 크게 패하는 결과도 가져오게 되었었죠.



우리가 잘 몰랐던 맥아더 장군의 비밀에 대해서 정리해봤습니다.


1. 맥아더장군의 판단착오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과연 좋았을까?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쟁에서 이룬 최고의 업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대목 입니다. 실제 작전의 성공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죠. 이 작전을 통해 비로소 유엔군이 낙동강의 북한군 전선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병참시설을 확보해 북한군의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의 눈부신 승리가 맥아더 장군에게 결과적으로 판단착오를 불러왔었습니다. 이 작전으로 북한군 대다수가 붕괴되었다고 생각했었고, 북한군 완전 격파를 한줄 착각하게 된 것이었죠.



인천에서의 성과가 너무 컸기에 그 누구도 그들의 자신감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을것입니다. 그 결과 맥아더는 중국군이 대거 잠입을 알아채지 못한 채 1950년 11월 24일 전면적인 북진 공세인 '크리스마스 총공세'를 단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군에게 크게 패함으로써 본인의 실패를 인정하게 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뼈아픈 실패를 불러온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전쟁광이었던 맥아더 장군


확전론자로서 맥아더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그에 대한 평가와 직결됩니다. 실제 중국군의 개입 이후 맥아더 장군은 병력을 증원하고 만주를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트루먼과 끊임없이 갈등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트루먼은 가급적 외교적 해결 방식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져서 맥아더장군을 유엔군 사령관에서 해임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죠. 맥아더는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는 인물이었으며, 소련의 개입도 개의치 않고 본인의 정복욕을 채우려는 전쟁광인 셈이었습니다.


3. 원자폭탄을 투하하려 했던 맥아더 장군


맥아더의 확전론과 함께 거론되는 쟁점은 바로 원자탄 투하 논의입니다. 맥아더는 한국전쟁 직후였던 1950년 7월부터 중국을 대상으로 원자폭탄을 활용하는 방법을 이미 언급했었고, 1951년 3월 초를 기점으로 합동참모본부에 본격적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맥아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맥아더가 한반도에 세계대전을 불러올 뻔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4. 맥아더는 오만함? 자신감?


맥아더의 인간 됨됨이에 대한 평가 중 공통적인 것이 '오만함'입니다. 맥아더는 명문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입학했고 역사상 세 번째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첫 번째 결혼식에 온 맥아더의 하객은 단 한 명이었고, 군 생활 중에도 같은 장교 동료는 거의 없이 자신을 떠받드는 부관들하고만 어울렸습니다. 이 같은 그의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은 전쟁에 있어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전쟁 중 자신감의 대표적인 경우는 '인천상륙작전'이며, 오만함의 대표적인 경우는 '크리스마스 총공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 초반 북한군을 과소평가했고, 중국군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 보았던 것도 그의 성격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공확률 5천분의 1이라는 주위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단행하여 대성공을 거둔 인천상륙작전도 그의 성격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