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을 놀라게한 장진호 전투의 비밀

미 해병대의 한국전 참전은 인천상륙작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존재 가치를 부각시켰으며, 일본군의 전쟁의지를 말살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맥아더 장군의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받게 되었으며, 미 해병대의 지휘관 스미스 소장의 신중함과 뛰어난 결단력이 돋보였던 전투가 있었습니다.


1) 아놀드 군단장과 스미스사단장의 마찰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끝마친 미 해병1사단은 원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스미스사단장은 그곳에서 아놀드 10군단장이 지시한 장진호를 거쳐 평양에 있는 미8군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명령은 맥아더 장군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겠지만 스미스사단장은 당당히 명령거부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중공군과 맞서 싸우기로 예정된 지역은 산세도 험하지만 엄청나게 추운 곳인 만큼 후퇴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2) 명령 거부한 스미스 장군. 진군 속도 늦추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의 명령이었고, 군인으로써 상사의 명령은 어느정도 존중해줘야되기 때문에 스미스 장군은 천천히 진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진군하는 도중에도 곳곳에서 중공군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매복된 적들과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험한 산길을 넘어 장진호 남쪽 기슭에 있는 하갈우리에 도착하자 스미스 장군은 더이상 진군하지 않고 그곳에 비행장 활주로 및 보급창고를 지어서 기다렸습니다.


3) 영하의 강추위에 중공군 병사는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중공군의 총공격을 시작되었습니다. 미 해병은 자기들이 지키던 고지를 사수하였지만 중공군에 밀려 자신들이 왔던 험난한 길을 되돌아 가야만 했었습니다.



밤이되면 영하 30도의 강추위 속에서 중공군에 동상이나 설사로 쓰러지는 병사들이 속출하였고, 오희려 이들은 스스로 미 해병에 포로가되거나 피난민 틈에 섞여서 도망가는 병사들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4) 현대전에서 가장 위대한 공격


스미스의 해병사단이 포위된걸 확인한 맥아더 장군은 즉시 비행기로 공중탈출을 지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스미스 장군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해병대의명예에 먹칠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투장비 및 물자와 함께 방향을 바꿔가며 자연스럽게 후퇴를 하였습니다. 작전은 후퇴였지만 다른 의미로 새로운 공격인것이었습니다.



혹독한 강추위에 총이 얼어붙고, 동상 희생자들이 많이 발생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흥남까지 후퇴한 미 해병사단은 승리자였습니다.


그들이 장진호 전투에서 입은 피해는 대략 5,000여명이었고 중공군은 무려 3만7,500여명이 희생되었기 때문 입니다.


그들은 낯선 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불굴의 투지를 보여줌으로써 낯선 곳으로 나아갈 때 지녀야 할 신중함을 절대 잊지 않았던 부대였으며 지휘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