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VS 34명. 우리가 잘 모르는 전쟁영웅 김만술 대위

1950년 당시 북한과 남한은 끊없는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우리가 미쳐 알지 못했던 용감한 영웅 한명이 있었습니다.


전쟁영웅 김만술 소위를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 입니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과 애국심, 전우애는 특별했습니다. 오늘 한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 장군보다 위대한 전쟁 영웅 김만술 특무상사

1950년 6월 25일 북한공산군이 불법 기습과 침공으로 인해 국군 장병 약 14만 명 전사, 13만 명 실종 그리고 70만 명이 부상당하는 희생이 발생하였습니다.


37개월의 치열한 전쟁 동안 용감하게 싸운 장군도 많았지만, 적에게 포위되자 사단병력을 버리고 도망간 사단장과 군단병력을 둔 채 비행기로 혼자 탈출한 군단장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불과 34명의 소대 병력으로 1000명이 넘는 중국군 2개 대대를 섬멸한 부사관 출신의 김만술 소대장이 있었습니다. 한국정부로부터 훈장서열 1위인 금성태극무공훈장을 받았으며, 미국정부로부터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최고훈장인 십자훈장을 받은 그는 1960년 대위로 제대한 후 전투 중 입은 부상 후유증 때문에 1991년 63세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2) 34명 전사들과 1000여명의 중국군 2개 대대와 전투 시작

1947년 6월부터 약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전투로만 일관해오던 중 1953년 7월 15일 직속상관인 제1사단장 김동빈 준장의 구두 명령으로 특무상사에서 소위로 특진하게 되었습니다. 1953년 7월 중순은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과 북한 양쪽 군대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전력을 다해 사투를 벌일 때였습니다. 


1사단 11연대의 전초기지는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북방 베티고지였고 2대대 7중대 1소대가 방어하고 있었는데 중국군의 공격을 받아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신임 2소대장 김만술 소위는 1소대와 진지교대 명령을 받았고, 진지를 교대하자마자 김만술 소위와 34명의 소대원은 공격해오는 1000명 이상의 중국군 2개 대대와 전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3) 뛰어난 총검술의 달인

김만술 소대장은 1953년 7월 15일 15시 30분경에 베티고지 서봉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아 적을 기습 공격하여 5명의 죽였으며, 8부 능선까지 진격하게 되었습니다.


중국군은 약 800명의 대대의 공격이 개시되었고 중국군이 아군의 참호 속까지 뛰어들어오자 김만술 소대장은 총검으로 과감하게 적을 죽이고 물리쳤으며 이를 본 소대원들은 용기가 솟아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4) 35명의 영웅들이 1000여명의 중국군과 싸우다

그날 밤 적은 다시 동봉과 중앙봉으로 각각 1개 중대 병력(160명)과 2개 중대 병력(320명)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공격 중인 적들이 교통호로 침입하자 김만술 소대장은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적을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하지만 중국군은 포기하지 않고 대대급 부대가 또 공격해오자 불과 30여 명의 병력을 갖고는 사격, 수류탄 투척과 백병전 등을 해도 도저히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김만술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참호 속으로 대피시키고 아군에게 진 내 포격을 요청하였습니다. 진 내 포격을 하게되면 아군도 위험해질 수 있지만 김만술 소대장은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네 차례의 진 내 포격으로 중국군은 일시 퇴각하게 된 것입니다.


중국군이 세번째 공격을 해오던 시기에 아군 병력의 1/2 이상이 전사하였으며, 나머지 10여 명은 후방 지원이 없어 수류탄, 총검, 철모와 야전삽 등으로 적들과 죽이고 죽이는 처절한 백병전을 계속하여 중국군 314명을 죽이고 450명을 부상시키며 3명을 포로로 잡게 되었습니다. 중국군은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 결국엔 퇴각하게 된 것입니다.

적이 퇴각한 후 12명의 생존 소대원들은 중국군 시쳇더미에 얽혀 있는 23명의 전우 시체를 껴안고 통곡하게 되어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게 되었습니다.